신조형주의 [Neoplasticism]
신조형주의는 네덜란드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주의와 그의 작품으로 형상화되는 예술에 관한 철학적 사상으로 데 스틸(De Stijl)이라고도 명한다. 이 용어는 몬드리안이 철학자이자 신지학자였던 쇤마커스 박사의 저술로부터 영향을 받아 채택한 용어이며, 이는 그의 첫 출판물이자 1917년부터 1918년에 걸쳐 연재된 《데 스틸》지의 ‘회화에서의 신조형주의’에서부터 사용되었다.
'데 스틸'은 네덜란드의 화가와 디자이너, 작가, 비평가 등이 출판한 잡지의 이름이기도 하며, 그들의 그룹명이었다. 이 모임을 통해 그들은 신조형주의의 이론을 전파했다. 신조형주의 운동은 입체파 회화와 수학자 쇤마커스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에서 온 이상적인 기하학적 형태에 대한 개념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 운동은 ism(또는 ~주의.)의 일반적인 기준을 따르지 않으며, 예술학교의 원칙에 충실한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다만 집합적인 프로젝트며, 공동의 기획이라고 볼 수 있다. '데 스틸'의 주요 멤버로는 테오 판 두스부르흐와 피에트 몬드리안, 빌모스 후사르, 바르트 판 데르 레크등이 있으며, 건축가인 헤리트 리트펠트, 야코부스 아우트, 로베르트 판트 호프등이 있다. 신조형주의의 중심에 있었던 몬드리안은 예술은 ‘탈자연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미술작품에서 자연의 형태와 색상을 배제하고 순수한 추상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화면에서 형태적, 색상적 요소들을 점차 감축해 가는 작업을 지속하다가 마침내 조형 요소를 수직선과 수평선, 빨강, 파랑, 노랑(삼원색)과 백색, 회색, 검은색(삼무채색)으로 규정지으며 이러한 8가지 요소를 통해 기하학적이고 평면적인 작품을 탄생시켰다. 가변적이고 특수한 것에서 벗어나 불변하고 보편적인 법칙이라는 이상을 표현하며 보편적인 리얼리티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몬드리안의 영향을 받은 ‘데 스틸’ 그룹의 예술가들은 기하학적 추상 작업의 특징을 작품에 담아내며 형태적 변형을 통해 개인의 독창적 표현을 이루고자 하였다. 이들 작품의 공통된 기하학적 추상 작업의 특징은 수평선과 수직선, 원색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평면적 화면이다.
신조형주의 운동이 탄생한 시대적 상황을 보면 인상주의의 등장 이후 기존의 방식을 벗어난 회화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찾고자 하였던 새로운 미술 운동들이 계속하여 나타나게 된다. 그러한 가운데 입체주의가 20세기 초반에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새로운 조류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네덜란드에서도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미술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국으로의 위치를 유지했고, 그 때문에 네덜란드의 예술가들은 1914년 이후 네덜란드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네덜란드를 국제적인 미술 세계, 특히 당시 예술의 중심이었던 파리와의 고립을 야기한다. 이 시기 동안 화가인 테오 판 두스부르흐는 새로운 미술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 다른 예술가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화가이자 건축가인 동시에 작가, 시인, 비평가이기도 한데 예술가로서의 활동보다 예술에 대해 저술하는 것에서 더욱 성공한 인물이다. 또한 화려한 개인성과 외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 익숙했고, 미술 세계에서 유용한 넓은 인맥을 갖기도 한다. 그는 '데 스틸'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함께할 예술가들을 만나고자 하였는데 그 처음이 바로 피에트 몬드리안이었다. 몬드리안은 사실 1912년 파리로 이주했었는데, 잠시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전쟁이 발발하며 발이 묶이게 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파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네덜란드에서 머물며 여기서 쇤마커스를 만나게 된다. 쇤마커스가 출판한 '세계의 새로운 이미지'와 '조형 수학의 원리'는 몬드리안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되고 다른 데 스틸 구성원들에게 또한 마찬가지였다. 또한 테오 판 두스부르흐는 야코부스 아우트와 빌모스 후사르와도 알고 있었으며 바르트 판 데르 뢰크 등이 모이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잡지의 이름은 딴 데 스틸 그룹으로써 활동한다. 1921년경부터 이 모임의 성격은 변하기 시작했다. 말레비치와 러시아 구성주의에 영향을 받은 판 두스부르흐가 대각선 요소를 도입하자는 의견을 내놓으며 몬드리안과 이견이 생겼고, 이 때문에 몬드리안은 그룹에서 탈퇴하게 된다. 이 같은 요소주의 이론은 모든 구성원에게 동의를 얻기 힘들었고, 후에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아들이기도 해 논란은 가중된다. 탈퇴 후 몬드리안은 바우하우스에 좀 더 관심을 가지며 접근해 나갔다. 그 후 그의 작품은 미국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아지며 전성기를 맞이한다. 한편 데 스틸은 1931년까지 활동하다 그룹의 핵심이었던 판 두스부르흐의 죽음으로 해체되게 된다.
신조형주의의 시도는 이후 바우하우스 운동과 아르데코, 미국의 옵아트 등으로 이어졌으며, 더 나아가 미니멀리즘과 추상표현주의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20세기의 회화뿐 아니라 조각, 공예, 건축, 디자인, 패션 분야 등에 걸쳐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새로운 조형 이념에 크게 기여하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신조형주의(세계미술 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신조형주의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위키백과] 신조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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