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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르네상스 (Renaissance)

by 마미레이첼 2023.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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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Renaissance)
 르네상스(Renaissance)는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일어난 유럽의 문예 부흥을 말한다. 과학 혁명의 토대가 만들어져 중세를 근세와 이어주는 시기가 되었다.  문예부흥이란 14세기에서 시작하여 16세기말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과거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재인식하고 재수용했음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사상, 예술을 본받아 인간 중심의 정신을 되살리려 하였다. 이 부분에서 르네상스는 일종의 시대적 정신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르네상스의 어원은 이탈리아어로 Rinasimento이며 이 말은 프랑스 역사가 미슐레에 의해 프랑스어인 Renaissance라는 말로 확립되었다. 이것이 영어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르네상스는 재생이라는 뜻으로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 또는 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에 포함된 재생이라는 의미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고전의 재발견이고 또 하나는 유럽 문화에 생기와 부흥을 불어넣은 것이다. 보통은 두 번째 의미로 사용된다. 1975년 이후 많은 학자는 르네상스가 하나의 특정 운동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같은 발상을 하게 된 이유는 이 시기 외에도 문화부흥 현상이 보인 기타의 다른 시대에 대해 이 용어를 사용하는데, 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 12세기의 르네상스, 상업의 르네상스, 로마법의 르네상스 등이 이에 속한다.  르네상스라는 개념 형성은 이미 그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이런 관점이 학자들 사이에 많이 보편화되어 ‘이탈리아 르네상스’, ‘영국 르네상스’ 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등장으로 요즘에는 ‘르네상스 시기’라는 말이 ‘근대 초기’라고 쓰이는 경우도 많다.  현재까지도 르네상스라는 말의 사용은 어떤 시기의 전성기를 나타내는 데 은유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면 5세기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그때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 즉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보았으며 앞선 포스팅에서도 말했다시피 고딕이라 명한 것도 이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이 야만 시대를 벗어나려 함이 르네상스의 시작이다. 르네상스의 시작과 더불어 1000년간의 기나긴 중세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되고, 르네상스를 거쳐 근세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많은 학자가 르네상스를 명백하게 시대적으로 구분하기는 힘들다고 하며, 여러 곳에서 점진적으로 시작된 운동이기 때문에 정확한 시작과 끝을 가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마찬가지로 르네상스 시대에는 점성술이나 마술 등 비이성적, 비과학적인 태도가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중세가 언제 어디서 끝났는지 중세와 르네상스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힘들다고 보았다. 또한 르네상스가 근세의 시작인가에 대한 논쟁도 아직 계속되고 있다.  보통 르네상스가 시작된 장소로는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라는 통설이 가장 유력하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고대 그리스 문화를 계승 발전시켰던 비잔틴제국, 동로마 제국의 붕괴가 있다.  이에 따라 전쟁을 피하기 위해 서유럽으로 비잔틴 출신 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유입되었고, 그들이 지니고 온 책자의 번역과 비잔틴 지역에서 탈취한 문헌 및 책들을 유통한 대규모 도서 거래상의 활동들이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이탈리아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유럽의 오래된 종교적 질서가 붕괴하는 것에 일조하였다. 또한 이탈리아는 지리적으로 이슬람 세계, 비잔틴 세계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서유럽과의 중간다리 역할을 해왔다. 11세기 이후 상업의 발달과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도시가 활성화되며 점차 도시국가 형태의 자치도시가 되었다.  13세기말 경제 성장기에 들어서는 사회계층의 변화가 심해지며 특유의 시민문화가 형성되었는데 도시국가는 그 특성상 고대의 도시국가와 유사한 점이 있어 로마법이나 정치제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조건들로 하여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발생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르네상스의 정신은 곧 알프스를 넘어 유럽의 다른 국가(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등)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나라들은 이에 거의 영향을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사상의 기본요소를 설정한 이는 페트라르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인문주의자라는 평가받는 페트라르카는 로마 제국 시대에 인간이 최고의 것을 성취했고 이후 점차 부패하여 중세 암흑시대까지 이르렀다고 보았다.  그는 고대를 문화의 절정기로 보는 반면에, 중세를 인간의 창조성이 철저히 무시된 ‘암흑시대’라고 봄으로써 문명의 재흥과 사회의 개선은 고전학문의 부흥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전문헌을 모으고 라틴어로 시와 책을 쓰다가 이런 식으로 고전 교양을 모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사색하는 방식을 '인문주의'라고 불렀다.  당시 페트라르카의 생각과 뜻을 같이한 인문주의자들은 이러한 뜻에 확신이 있었으며, 이들은 단순한 라틴 학문의 부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지적·창조적 힘을 재흥시키려는 신념에 차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1348년의 흑사병과 각종 정치적인 격변으로 더 이상 꽃피지 못했다. 이러한 인문주의가 다시 꽃피게 되는 것은 15세기가 되어서였다. 16세기 초 르네상스 운동은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종교 개혁의 원동력이 되었고 이는 교회 개혁과 학문적 방법에 영향을 주었다. 130년간 지속되던 르네상스는 1530년경 끝이 났다. 그 이유는 우선 1492년 크리스토발 콜론이 포르투갈인들과 함께 인도로 가는 해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메리카로 가는 해로였다.  그 후에는 북서부 유럽의 상인들이 무역상품을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벨기에의 앤트워프를 통해 거래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또한 1517년 아우구스티노 회의 수도사인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서유럽 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교회로 분열되었다.  교회의 분열은 납부금과 세금의 형태로 이탈리아를 풍요롭게 했던 자금줄의 고갈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는 상업적 무역자본과 자금, 두 가지를 동시에 잃게 된다. 또 그 당시 이탈리아 전쟁 등이 겹치며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이 르네상스의 쇠퇴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미술의 황금기라고도 할 수 있는 르네상스는 피렌체에서 1400년경 시작해 100년이 지난 후 로마와 베네치아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때 바로 르네상스의 3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미술가들이 등장한다.  1,500년경부터는 북유럽 르네상스로 불리는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영국 등으로도 전개되었다.  기존의 신 중심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 중심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였으며, 현실을 표현하는 새로운 양식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해부학과 투시 도법에 의한 원근법과 명암 대조법, 유화의 발견 등이 이에 해당한다.  피렌체 파는 14세기로부터 1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중심으로 하여 르네상스 미술의 주류를 이룬 파인데, 특히 회화에서는 주지적 합리주의, 조형적 형태주의가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에 관련이 있는 것만을 단순화하고, 또 이를 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고딕과는 다른 형식의 회화를 만들어냈다.  이 전통은 장식적인 시에나 파와 대립하며 14세기 이탈리아 회화의 2대 주류를 이루었다. 한때 시에나 파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으나,  투시도적 기법과 조각 분야의 도나텔로의 과학적이며 실증적인 인체 조형의 성과를 도입한 다음부터는 회화적 현실표현에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였다.  피렌체 파의 사실적 성과는 메디치가의 번영에 힘입어 르네상스 회화 발전의 주류가 되었다. 이 자연주의는 1400년대 예술의 주류가 되었으며, 자연과학의 발흥과 더불어 인체묘사, 운동 묘사, 풍경묘사 등에서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되었다.  1500년대에는 이상주의적 성향이 짙어지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사실주의를 완성하면서부터 주관적 정신 내용을 그 속에 표현하였다.  미켈란젤로는 강인한 인체 표현 속에 인간의 정신적 고뇌를 표현하며 피렌체 파의 최종적 단계를 장식하였고, 바로크 양식의 선구자가 되었다. 유채 화법은 네덜란드 르네상스 시기에 이루어진 발명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유채 물감은 마르는 속도가 더뎌 덧칠이 가능하고, 색채의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과 재료상의 특성으로 질감 표현까지도 가능했다. 항구 도시였던 베네치아에서는 프레스코화가 맞지 않아 비잔티움의 모자이크를 애호하였는데 이 시기에 전래한 유채 화법을 채용하여 회화사상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1520년 라파엘로가 전년에 죽은 레오나르도의 뒤를 따라 타계함으로써 드디어 짧았던 황금의 시대는 종막을 고하게 된다.

출처: [위키백과] 르네상스, 르네상스미술 [네이버 지식백과] 르네상스 [Renaissance], [네이버 지식백과] 르네상스 - 근대 회화의 시작이 된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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